한자 편집하기
누리위키, 온 누리의 백과사전
편집을 되돌릴 수 있습니다.
이 편집을 되돌리려면 아래의 바뀐 내용을 확인한 후 저장해주세요.
최신판 | 당신의 편집 | ||
10번째 줄: | 10번째 줄: | ||
[[한국]]에 중국 문자가 들어오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중국으로부터의 [[불교]] 전래이다. 하지만, 한국에 한자를 도입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중국 문서는 [[종교]]와 관련된 것이 아닌, [[천자문]](千字文)이라는 책이었다. 천자문은 말 그대로 1,000자로 지은 책으로서, 이후 한문 초학자를 위한 교재로 널리 이용되었다. | [[한국]]에 중국 문자가 들어오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중국으로부터의 [[불교]] 전래이다. 하지만, 한국에 한자를 도입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중국 문서는 [[종교]]와 관련된 것이 아닌, [[천자문]](千字文)이라는 책이었다. 천자문은 말 그대로 1,000자로 지은 책으로서, 이후 한문 초학자를 위한 교재로 널리 이용되었다. | ||
− | 중국어와 한국어의 문법은 크게 다르기 때문에 한국어를 중국 문자로 적기 위해서는 중국어의 문법 구조를 따로 배워야 했다. 하지만 | + | 중국어와 한국어의 문법은 크게 다르기 때문에 한국어를 중국 문자로 적기 위해서는 중국어의 문법 구조를 따로 배워야 했다. 하지만 먹고살기 바쁜 평민들의 경우 그럴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개발한 방법이 [[향찰]]이다. 향찰은 문법과는 상관없이 한자의 음과 훈만을 빌려 한국어를 소리 나는 데로 표기한 것이다. 예를 들어, “선화공주님”이라는 한국어를 앞의 “선화공주”는 한자의 음을 빌려 “善化公主”로 표기하고, 뒤의 “님”은 한자의 뜻을 빌려 “主”('''님''' 주)이라고 표기하는 식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구결]]은 한자 사이에 한글로 토를 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國之語音'''이''' 異乎中國'''하여'''” 같은 것이다. |
15세기에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글이 한자를 대체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글이 한자를 완전히 대체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이다. 1980년대부터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한글과 한자를 섞어 쓰던 것을 점차 한글 전용으로만 쓰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부터는 [[인터넷]] 보급과 더불어 한글 전용 추세가 강화되었다. 하지만 [[사전]] 등에는 원활한 뜻풀이를 위해 한자를 괄호 안에 표기하고 있다. | 15세기에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글이 한자를 대체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글이 한자를 완전히 대체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이다. 1980년대부터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한글과 한자를 섞어 쓰던 것을 점차 한글 전용으로만 쓰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부터는 [[인터넷]] 보급과 더불어 한글 전용 추세가 강화되었다. 하지만 [[사전]] 등에는 원활한 뜻풀이를 위해 한자를 괄호 안에 표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