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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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상소(한자: 癸酉上疏)는 1873년최익현이 올린 상소를 이르는 말이다. 계유년인 1873년에 올린 상소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배경[편집]

당시 흥선대원군은 왕권강화의 일환으로 경복궁을 재건하기 위해 원납전을 걷거나 당백전을 발행했는데, 이는 경제를 혼란케하고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에 최익현은 1868년에 경복궁의 재건을 중단하라는 상소를 올렸으나 대원군에 의해 파직당하고 만다.

이후 고종에 의해 관직을 여러 차례 제수 받은 바 있으나 잠깐 부임하거나 물러받거나 거절했는데, 계유상소는 그 과정에서 제출한 상소이다. 상소는 총 2개로 각각 동부승지를 사직한다는 사동부승지소(辭同副承旨疏)[1]와 호조참판을 사직한다는 사호조참판겸진소회소(辭戶曹參判兼陳所懷疏)[2]로, 보통 후자를 계유상소로 칭한다.

영향[편집]

이와 같은 최익현의 상소에 상소와 관련해 사직을 청하거나 안기영이나 허원식 등이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최익현 스스로도 1875년까지 1년 반동안 제주도로 유배되었으나, 결과적으론 흥선대원군이 하야하는 등 뜻을 이루게 되었다.

기타[편집]

주석[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