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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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Yeungnam University
영남대본부.jpg
위상 한 때는 지방 최고의 명문 사립대학교
알아주는 학과 의대
설립 1967년
종류 사립 종합대학교
총장 서길수
위치 경산캠퍼스 (본캠퍼스)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
대구캠퍼스 (의대캠퍼스)
대구광역시 남구 현충로 170
규모 2캠퍼스, 17대학, 11대학원
학생 수 학부: 30,052명 (2019)
대학원: 2,857명 (2019)
상징 천마(天馬)
웹 사이트 http://www.yu.ac.kr

영남대학교(영어: Yeungnam University, YU)는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4년제 사립종합대학교이다. 대구대학청구대학박정희 대통령의 주도하에 1967년 통합하여 설립되었다. 상징은 천마(天馬)이다. 영대로 흔히 줄여 부르며, 학교 측에서는 영문 약칭인 YU를 밀고 있다.

역사[편집]

이래저래 역사가 꽤나 복잡하다.

대구대학은 1947년에 경주 최씨 가문의 마지막 부자인 최준(崔浚)이 설립한 대학교이다. 경주 최씨 집안은 정의로운 부자 집안으로서,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온 명문 가문이다. 최준은 인재 양성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을 아낌없이 대구대학에 쏟아 부었고, 학교 운영에도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1961년에 5.16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지식인들을 혼내 줄 생각으로 대학정비사업을 추진하였고, 이 과정에서 자금난을 겪고 있던 대구대학은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1966년에 삼성그룹에서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사건을 덮어주는 대가로 대구대학을 넘겨받게 된다.

청구대학은 1948년에 최해청이 설립한 대학교로서, 역시 대학정비사업으로 인해 위기를 맞은 후 교직원 비리가 발견되자 이사회 측에서 스스로 대학을 박정희에게 넘겨버렸다.

이렇게 하여, 두 대학의 주인이 된 박정희는 1967년에 두 대학을 통합시켜 영남대학교를 설립하였다. 이후 박정희의 측근들이 이 대학의 요지를 차지하였으며, 이들은 정권의 비호 아래에서 온갖 비리를 마음껏 저지르며 잘 먹고 잘 살았다. 박정희가 사망하고, 10.26 사태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가 정권을 잡은 뒤인 1980년에는 박근혜가 이사직에 선출된다. 박근혜와 본 대학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지만 그저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사가 된 것이다. 이후 박근혜는 1988년까지 8년 동안 영남대학교 이사직에 있었다.

자랑거리[편집]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영남대학교는 지방에 있는 종합사립대학으로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다수의 대법관, 대기업 임원, 정치인을 배출해왔으며 동문만 본다면 연고대가 부럽지 않을 수준이다.

또 다른 자랑거리로는, 넓은 캠퍼스 부지가 있다. 캠퍼스 부지가 정말 무식할 정도로 넓다. 교지면적 150만m2의 광활한 캠퍼스에 건물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 물론 학교 이곳저곳을 다녀야 하는 학생들로서는 고역인 부분이겠지만, 캠퍼스 부지에 경사가 적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안성맞춤이다.

대구 지하철 2호선 영남대역이 학교 정문과 붙어있기 때문에 대구 방면에서의 통학이 편리하다. 영남대 정문 인근은 경산 최대의 번화가이기도 하다.

안 자랑거리[편집]

1990년대를 거치면서 학교의 위상이 말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방의 서울대라는 명성은 사라진 지 오래이며, 오늘날의 영남대학교는 지방에 있는 그저 그런 종합 사립대학교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사회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동문파워가 아직 남아있기는 하지만, 오늘날의 영남대학교 학생 수준이 워낙 수준 이하여서 그것도 사실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학교 수준에 비해서는 취업이 잘되는 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는 하다.

사진[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