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박근혜 (2013년 5월)

박근혜(朴槿惠, 1952년 2월 2일 ~)는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이다. 2012년 12월 19일 치러진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선거를 통하여 대한민국의 첫 여성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동북아시아를 통틀어 현대사에 등장한 첫 여성 국가수반이기도 하다.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전에는 2004-2006년과 2011-2012년에 걸쳐서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2012년 2월에 새누리당으로 당명변경)의 당대표를 지냈다. 박근혜는 1998년부터 2012년까지 4차례 연속하여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2012년 6월에는 새누리당의 비례대표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박근혜의 아버지인 박정희는 1962년부터 1979년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직을 역임하였다.

2013년과 2014년에 박근혜는 포브스(Forbes) 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의 여성 중 한 명으로 평가되었다. 포브스 지에 따르면 박근혜는 동아시아에서 11번째로 유력한 여성이다. 또한, 포브스 지에서 선정한 52번째로 유력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는데, 이는 한국인 중에서는 반기문이건희 다음으로 높은 순위이다.

2016년 12월 9일, 대한민국 국회는 박근혜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등 직권남용 혐의로 탄핵 소추시켰다. 탄핵 소추와 동시에 박근혜의 대통령 권한과 업무가 정지되었으며,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였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하면서 대통령으로서의 임기가 조기 종료되었다. 이로서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재판에 의해 강제로 내쫓겨난’ 대통령이 되었다.

초기 생애[편집]

박근혜는 1952년 2월 2일 대구 중구 삼덕동에서 박정희의 첫째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육영수이며 남동생 박지만, 여동생 박서영과 함께 어린 시절을 지냈다.

1953년 박근혜 가족은 서울로 이사하였으며 박근혜는 서울에서 장천초등학교과 성심중·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70년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교로 진학하여 1974년에 서강대학교에서 전자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프랑스의 명문대학교인 그레노블 대학에서 잠깐 공부를 하였으나 어머니(육영수)가 암살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프랑스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박근혜의 어머니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행사가 진행 중이던 국립극장에서 조총련 소속 북한 추종자인 문세광이 쏜 총에 맞고 암살되었다. 이후 박근혜는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행하였다. 1979년 10월 26일에는 아버지 박정희마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을 맞고 암살되었다.어릴 때 부모 잃어...

정치 경력[편집]

국회의원[편집]

박근혜는 1998년 보궐선거를 통해 한나라당 소속 대구 달성구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2000년 총선, 2004년 총선, 2008년 총선에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연달아 당선되었다. 2012년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의 전체적인 선거지휘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하여 지역구 국회의원이 아닌 새누리당의 11번째 비례대표의원으로 출마, 당선되어 5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선거의 여왕[편집]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로 인한 역풍과 때맞춰 폭로된 이회창의 뇌물 스캔들(차떼기 사건)로 인하여 한나라당은 2004년 총선에서 참패할 운명에 처해 있었다. 오죽하면 당 내부에서 한나라당을 없애고 재창당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 와중에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된 박근혜는 그간의 논란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하면서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한나라당으로 거듭 태어나겠다는 의미에서 한강 둔치에 천막을 치고 한나라당 당사를 이곳으로 옮겼다. 한나라당의 “천막당사”는 국민들에게 진정성 있는 개혁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결국 국회의석 121석을 지켜내면서 당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상당한 선방을 했다. 이 때부터 박근혜에게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하였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선거 유세를 다니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괴한의 커터칼 습격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박근혜의 얼굴에는 11cm 길이의 상처가 났으며, 병원으로 이송된 후 수 시간에 걸쳐 60바늘을 꿰맸다. 수술 이후 회복 중이던 박근혜가 자신의 수행원에게 던진 말은 바로 “대전은요?”였다. 당시 경합지역이었던 대전광역시장 선거 진행상황을 물어본 것이다. 이 일화는 널리 유명해졌으며, 갈등하던 대전시민의 마음이 한 쪽으로 움직이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대전광역시장 자리는 한나라당 소속의 박성효 후보 차지가 되었다. 이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호남제주 지역을 제외한 모든 광역자치단체장 자리를 싹쓸이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박근혜는 이 선거를 통해 선거의 여왕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하였으며, 차기 대통령 후보로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2007년 대통령선거[편집]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로 나서려 했으나 이명박과의 경합 끝에 미세한 차이로 패배하여 대통령 후보는 되지 못하였다. 박근혜는 이명박 후보의 비리 연루 혐의를 거론하며 집중 공격하였으며, 결과적으로 당내선거인단 선거에서는 이명박 후보에 앞섰지만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민여론조사 결과에서 밀리면서 패배하였다.

2008년 총선[편집]

2007년 대통령선거 결과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곧이어 치러진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친(親)이명박계 인물들을 대거 선거에 출마시켰다. 친 박근혜 계파는 이를 일종의 정치적 보복으로 받아들였으며, 결국 한나라당을 탈퇴하고 친박연대라는 새로운 당에 가입하였다. 이 상태에서 치러진 2008년 총선에서 친박연대는 14석의 국회의석을 확보하며 의외의 선전을 거두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 본인은 한나라당에 끝까지 남았으며 오히려 탈당자들에게 한나라당 복귀를 권유하였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합당 거부와 친박연대 내 갈등으로 인하여 합당은 오랫동안 성사되지 못하였다. 결국 2012년에 와서야 한나라당에 흡수 통합되었다.

2012년 총선[편집]

이명박의 임기 말에 이르러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땅에 떨어진 2012년,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비상대책위원장 자리에 올라 한나라당의 쇄신을 주도하였다. 박근혜는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개명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이명박 정권의 비리 스캔들에 휘말려 패배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152석의 국회의석을 확보하여 과반수 의석 확보에 성공하였다. 13일간의 선거기간동안 박근혜는 7200km에 이르는 긴 거리를 이동하였으며 100군데가 넘는 선거구를 방문하였다. 박근혜의 이러한 행보는 새누리당의 승리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며 박근혜의 리더쉽이 재평가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2012년 총선에서 박근혜는 “선거의 여왕의 재림”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2012년 대통령선거[편집]

박근혜는 이명박 당선 직후부터 이미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어왔으며,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었다. 박근혜의 지지율은 2008년 총선 당시 가장 높았으며, 세종시 문제로 이명박 대통령과 갈등을 빚던 2010년 초에 가장 낮게 나타났다.

2011년 9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이자 안랩의 창업자인 안철수가 대통령 후보로 급부상하였다. 이 당시 여론조사에서 안철수와 박근혜의 지지율은 엇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 박근혜의 지지율은 눈에 띄게 상승하였다. 2012년 8월 30일의 여론조사에서 박근혜는 차기 대통령으로서 45.5%의 지지율을 확보하며 다른 대선주자들을 압도하였다. 같은 해 9월 11일의 여론조사에서는 박근혜는 50.6%, 안철수는 43.9%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2012년 7월 10일, 박근혜는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공식적으로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하였다. 박근혜는 이 자리에서 국민의 행복 추구권, 경제 민주화, 맞춤형 복지 등을 주장하였다.

민주당에서는 문재인이 9월 17일에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으며, 안철수는 9월 19일에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였다.

결국 2012년 12월 19일에 치러진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는 51.6%의 득표율을 얻으면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017년 파면[편집]

  • 2017년 3월 10일, 탄핵 인용 선고로 파면 된 박근혜는 노동당으로 부터 건조물침입,업무방해,군사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 종로경찰서에 형사고발당했다.

현재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

정치적 성향[편집]

박근혜는 상당히 보수적인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감세정책, 규제 철폐, 법치주의 강화 등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그러나 2009년 들어서 부터는 복지에 초점을 맞추어 특히 “한국형 복지정책”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는 한 번 내세운 정치적 공약을 타협 없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원칙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2010년, 이명박 정부가 대선공약이었던 세종시 추진사업을 원안에서 수정할 것을 주장했을 때, 박근혜는 원칙과 신뢰를 내세워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였고, 결국 세종시는 원안대로 추진되었다. 박근혜는 2011년 당시 한나라당의 공약이었던 영남권 신공항이 경제성 문제로 취소되었을 때에도 “국민과의 약속을 어겨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내세워 계속 추진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똑같이 경제성 문제로 영남권 신공항이 무산시키는 일이 반복된 바 있다.

1974년 박정희 정권은 유신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유신반대 투쟁을 벌인 민청학련을 편파적인 수사를 통해 북한의 지령을 받아 국가전복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단체로 조작, 주요 주동자 8명을 사형시켰다. 인혁당 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2002년에 와서야 국가정보원에 의해 조작된 정황이 드러났으며, 2007년에는 대법원에서 사형되었던 주요 인물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다. 2012년, 박근혜는 이 사건을 두고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1]이 나온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 여러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감안해 역사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느냐”고 발언한 바 있다.

비판[편집]

일부에서는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박근혜의 아버지가 박정희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5.16 군사정변[2]에 대해서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발언하며 물의를 빚었다. 박근혜를 비꼬는 별명으로는 “수첩공주”가 있다. 이는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로 “귀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이를 비꼬아 “공주”라고 부르는 것이며, 박근혜는 대중연설을 할 때 준비된 연설문을 그냥 읽기만 한다고 해서 “수첩공주”라고 비꼬는 것이다. 박근혜는 무표정으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아버지 박정희를 닮아 감정의 표현이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인데, 이를 비꼬아 “얼음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저서[편집]

  • 2007년, <고난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 2001년, <나의 어머니 육영수>
  • 1998년,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
  • 1998년, <고난을 벗 삼아 진실을 등대삼아>
  • 1995년, <내 마음의 여정>
  • 1993년,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주석[편집]

  1. 1974년의 대법원 판결과 그것을 뒤엎은 2007년의 대법원 판결을 가리키는 것이다
  2. 박정희의 주도로 제2공화국을 무력으로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은 사건
ROKPresi.png 대한민국 대통령 ROKPresi.png
이승만 · 윤보선 · 박정희 · 최규하 · 전두환 · 노태우 · 김영삼 · 김대중 · 노무현 · 이명박 · 박근혜 · 문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