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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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이해찬(1952년 7월 10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총리이다. 2004년 6월 8일에 노무현 대통령이 이해찬을 총리로 지명했으며 6월 29일 국회가 여기에 동의하면서 6월 30일부터 총리직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임명 당시 열리우리당 소속이었으며, 5선 국회의원이었다. 2006년 3월 14일에 골프 스캔들로 인해 사임을 표명하였다.

2018년 8월 27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정치 경력[편집]

교육부 장관[편집]

김대중 정권 당시 1998년부터 1999년까지 교육부 장관을 지내면서 전국의 고등학교를 평준화하고 학교 교사의 정년퇴임 시기를 65세에서 62세로 앞당기는 등의 교육 개혁을 단행하였으나, 이는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 특히, “특기 하나만 있으면 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대학에 갈 수 있는 제도를 만들겠다.”라는 구호아래 추진된 급진적인 교육 개혁은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학업의욕과 학업 성취도를 크게 떨어뜨렸다. 이 때문에 당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세대에게는 이해찬 세대라는 멸칭이 붙기도 했다.

총리[편집]

교육부 장관으로서의 평판이 영 좋지 않았던 탓에, 노무현 대통령이 이해찬을 총리로 지명하겠다고 했을 때에는 많은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이해찬은 총리로서의 능력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으며,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소신껏 권력을 사용한 총리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세총리라는 별명으로 불린 이해찬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의견 충돌도 불사하였으며 특히 대통령의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임명 결정을 반대하면서 심한 언쟁을 벌였다.

2006년 3월 1일, 전국철도노동조합과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이 합동 파업에 들어갔다. 철도와 지하철이 함께 파업하는 유례없는 사태는 서울 지역의 교통을 마비시키고 국가 경제에 치명적인 피해를 유발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날 이해찬 총리는 부산 지역의 한 골프장에서 지역 사업가와 함께 골프를 치고 있었고, 이는 이른바 3·1절 골프파문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하여 많은 국민들은 이해찬 총리에 대해 실망감을 느꼈으며, 결국 이해찬 총리는 3월 14일에 총리직을 사임하였다.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