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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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2010년)

이회창(李會昌, 1935년 6월 2일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가톨릭 신자이다.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제16대 대통령선거(2002년), 17대 대통령선거(2007년)에 출마하였으나 모두 낙선하였다. 황해도 서흥에서 출생하였으며, 이후 아버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성장하였다. 이회창의 아버지는 서울지검 검사로 임관한 법조인이다.

엘리트 집안에서 출생하여 성장한 이회창은 아버지를 따라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였으며 25살의 나이에 판사로 임관하였다. 46살의 젊은 나이에 대법원 판사가 되었는데, 이는 국내 최연소 대법원 판사 기록이다. 이회창은 군부 정권의 청탁과 정치적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껏 판결을 내려 대쪽판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치 이력[편집]

1988년 이회창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선출되었으며 김영삼 대통령 시절이던 1993년에는 감사원장이 되었으며 같은 해에 국무총리로 취임하였다. 하지만 감사원장으로서 너무 열심히 정부 비리를 캐댄 탓에,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이자 당시 실권자였던 비리의 끝판왕 김현철의 심기를 건드렸다. 김현철과의 갈등 끝에, 결국 이회창은 국무총리에 취임한지 4개월 후에 국무총리직을 사퇴하였다.

제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1996년, 이회창은 여당인 신한국당으로 영입되었다. 신한국당은 1997년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이회창은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으나 결과적으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의 김대중에게 패배하였다.

이회창의 정치적 성향은 보수주의이며, 대북 강경책, 시장주의 및 친기업적인 경제 정책, 불법 시위에 대한 단호한 대처 등을 주장하였다. 이회창과 한나라당은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비판하였으며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단하기 전까지 금전적인 지원을 잠정 중단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회창은 2002년 다시 대통령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였다. 이회창은 김대중 정부의 부패와 무능을 질타하며 승기를 잡는 듯 했으나, 김대중 대통령의 후계자인 노무현 후보 측이 젊고 친근한 이미지로 인기를 끌면서 다시 대선에서 패배하였다. 이회창은 대선 패배 이후 정치계 은퇴를 선언하였다.

2007년 11월 7일 이회창은 무소속으로 17대 대선에 출마하였다. 17대 대선에서 이회창은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 대통합민주신당정동영 후보 등과 경쟁하였다. 이회창의 출마로 인해 보수표가 이명박과 이회창으로 양분되어 진보 성향의 정동영이 당선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의 이명박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고 이회창은 15%의 득표율로 3위에 머물렀다.

이후 2008년 자유선진당을 창당하여 충청도 지역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기도 했으나, 자유선진당은 2012년에 새누리당에 통합되었다. 이회창은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며 당선을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