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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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선 후보들의 선거벽보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선거대한민국에서 2007년 12월 1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이다. 선거 결과 한나라당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대한민국에는 10년 만에 다시 보수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사상 최초로 전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는 도중에 치러졌다. 투표율은 62.9%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배경[편집]

고건의 대선 불출마 선언[편집]

임기 말의 노무현 정권은 국민들에게 신임을 완전히 잃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은 임기 한때 5%까지 곤두박질쳤으며,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참패로 폭삭 망해버렸고, 망조를 느낀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열린우리당을 줄줄이 탈당하기에 이르렀다. 여당이 다음 대선에서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참신한 인물의 발굴이 절실한 상황이었다(1997년 이회창 같은).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런 인물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고건 전 총리였다. 고건은 노무현이 탄핵 소추(2004년 3월)되어 대통령 권한을 상실한 상태에서 대통령직을 대리 수행하였는데, 혼란한 정국에서도 침착하게 국정을 운영하면서 대통령보다 더 낫다는 평을 받게 된다. 고건은 전두환 정권 때부터 정치 활동을 시작하였고, 뛰어난 행정 능력으로 여러 정권을 거쳐 장관과 총리직을 맡아온 행정의 달인이다. 털어도 먼지 안 나오는 청렴함, 그리고 안정된 국정 운영으로 명성을 확보한 고건은 한나라당이명박, 박근혜를 제치고 가장 유력한 차기 대통령감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에게 입바른 소리를 일삼는 고건 총리를 매우 싫어했고, 고건 총리 기용에 대해 “나와 정부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 왕따가 됐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인사였다.”라며 악평을 내렸다(2006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고건은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따돌림 당한 것은 오만과 독선, 무능력 탓”이라며 정면 반박하였다. 결국 이를 계기로 노무현에 완전히 질려버린 고건은 노무현과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버렸고, 차기 대선에도 불출마하겠다는 선언을 했다(2007년 1월). 이렇게 여당은 여당의 마지막 희망을 놓쳐버리게 된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등장[편집]

제1여당인 한나라당에서는 2번의 대선을 거치며 이미지가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이회창의 입지는 줄어들고 있었다. 한나라당은 2004년 대통령 탄핵 역풍과 차떼기 사건으로 인해 당이 망할 위기에 처했으나, 박근혜가 당대표로 나서서 한나라당을 전두 지휘한 결과 제17대 총선에서 제1당 자리는 열린우리당에게 내주었지만 121석을 확보하면서 예상외의 선전을 거두었다. 이 선거에서 등장한 한나라당의 천막당사는 지금까지도 한나라당의 전설적인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박근혜는 이 선거를 계기로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유력 차기 대선후보로 떠오르게 된다. 2006년의 제4회 지방선거에서도 박근혜의 활약 속에 한나라당은 호남제주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광역자치단체장 자리를 독식하면서 사상 최대의 대승을 거두었다. 선거유세를 다니던 도중 박근혜 대표가 괴한의 커터칼 테러를 당하고 수술 끝에 병원에서 깨어난 직후 대전은요?라며 선거 상황을 물어본 에피소드 역시 박근혜의 명성을 드높였다. 한편, 이명박은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시장직을 맡으며 청계천 복원, 4색 버스체계 도입, 버스환승제도 개선, 중앙버스차로 도입 등으로 서울시민들에게 신임을 쌓으며 차기 대통령 후보로 급부상하였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에서는 이명박과 박근혜를 중심으로 계파가 형성되었다.

전개[편집]

대통합민주신당 경선[편집]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2006년의 제4회 지방선거를 계기로 폭삭 망해버렸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탈출 행렬이 이어졌다. 열린우리당에서 탈출한 피난민을 비롯한 민주당계 인사들은 대통합민주신당(8월 5일 창당)을 중심으로 재결합하게 된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어떻게든 ‘실패한 대통령’ 노무현의 이미지를 지워버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대통합민주신당은 별 영양가 없는 떨거지들의 오합지졸 집합소에 불과했고, 참신하고 명망 있는 인물이 없었다. 경선에서는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등이 등장하여 도토리 키재기 싸움을 벌인 끝에 MBC 뉴스데스크 앵커 출신의 정동영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2007년 10월 14일)되었다.

후보자 결과 득표율 득표수
정동영 선출 43.75% 216,984
손학규 2위 34.04% 168,799
이해찬 3위 22.21% 110,128
100% 495,911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편집]

오합지졸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과 달리, 제1야당인 한나라당에는 유력한 대선 후보가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있었다. 서울시장 출신의 이명박과 선거의 여왕 박근혜는 당 내에서 큰 계파를 이끌며 상당한 입지를 쌓아 놓고 있었다. 이명박 후보는 한반도 대운하 공약 등 경제살리기에 초점을 맞춘 공약을 내세웠다.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의 도곡동 땅 논란, BBK 주가조작 논란 등을 문제삼으며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을 비난하였다(박근혜: “엄청난 검증의 쓰나미가 몰아닥칠 것입니다”, 이명박: “여러분, 온~갖 음해에 시달렸습니다. 이거 다아아아아↗↗↗↗↗ 거짓말이거 아시죠?”).

이렇게 치열한 경선 끝에, 선거인단 선거에서는 당내 입지가 더 강했던 박근혜가 승리했지만,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서울시장직을 맡으며 대국민적인 인기를 끌던 이명박이 승리하면서 이명박이 득표율 1.5%차로 근소하게 승리를 거두었다(8월 21일). 박근혜 후보는 패배를 인정하고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돕는 데에 주력하였다.

후보자 결과 득표율 득표수
이명박 선출 49.56% 81,084
박근혜 2위 48.06% 78,632
원희룡 3위 1.47% 2,398
홍준표 4위 0.92% 1,503
100% 103,118

이명박의 독주[편집]

한나라당의 후보가 이명박으로 정해진 직후인 9월 20일의 여론조사에서는 각 대선후보의 지지율이 이명박 50.6%, 정동영 8.5%, 손학규 4.8%, 문국현 3.3%로 나타나며 이명박의 압도적인 승리가 점쳐졌다.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가 정동영으로 정해진 직후인 10월 16일의 여론조사에서도 이명박 51.9%, 정동영 20.2%, 문국현 8.7%, 권영길 3.6%, 이인제 3.3% 등으로 이명박의 압승이 점쳐졌다.

선거는 걸리버와 난쟁이가 싸우는 형국으로 진행되었다. 여당 후보 정동영은 여당 프리미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이명박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은 747공약(연 7% 경제성장률, 국민소득 4만 불, 세계 7위 경제대국), 한반도 대운하 공약등 파격적인 경제 관련 공약들을 내걸고 세금 감면과 규제 철폐를 통한 투자 활성화를 약속하였다. 반면, 비전도 희망도 없던 정동영 후보는 이명박의 도덕성을 공격(BBK 주가조작 논란, 도곡동 땅 투기 논란)하는 네거티브 전략을 내걸며 이명박을 헐뜯는데에만 치중하였다. 하지만, 대통령의 도덕성보다는 능력을 중요시하던 당시 시국에는 별로 먹혀들어가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국민들의 반감만을 샀다.

이회창의 대선 출마[편집]

이 와중에 아직도 대통령 욕심 못 버린 이회창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다(11월 7일). 이회창 등장 직후 여론조사(11월 7일)에서는 이명박 39.8%, 이회창 19.8%, 정동영 10.5%로 보수표가 이명박과 이회창으로 분열되는 양상을 나타냈지만, 이미 지난 2번의 대선에서 치부를 드러낸 이회창은 별다른 돌풍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지지율이 감소하게 된다. 선거 직전인 12월 12일 여론조사에서는 이명박 45.4%, 정동영 17.5%, 이회창 13.6%로 이명박의 압승이 점쳐졌다.

선거 광고[편집]

  • 이명박 후보의 CF (욕쟁이할머니 편)

이명박 후보의 CF는 경제대통령 이명박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였다. 욕쟁이 국밥 할머니의 입을 통해 국정은 돌보지 않고 당파싸움에만 치중하는 여당을 세련된 방법으로 비난하고, 경제 살리기에 대한 국민들의 소망을 표현하였다. 먹는 모습 하나만큼은 역대 대통령 중 최고이다.

  • 정동영 후보의 CF (좋은 대통령 편)

프리허그 모티프를 사용하여, 따뜻한 대통령, 좋은 대통령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좋은 대통령이라는 말은 나쁜 대통령 이명박을 겨냥하는 느낌이 난다. 슬로건으로는 가족이 행복한 나라를 내세웠다. 하지만 별다른 내용 없이 껴안는 장면만 나와, 그렇잖아도 내용과 비전이 없다며 까이던 정동영 후보에게 역효과를 내었다.

  • 이회창 후보의 CF

참 측은해 보인다... 대통령 삼수라니...

선거 결과[편집]

사실상 한나라당 경선이 대통령 선거

17대 대선 개표방송은 역대 대통령선거 중 가장 긴장감이 떨어졌다. 이명박이 당선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개표가 고작 4% 이뤄진 시점에서 이명박 당선 확실이 뜨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명박 48.7%, 정동영 26.1%, 이회창 15.1%의 최종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이명박 후보가 큰 표 차로 승리를 거두었다.

후보자 정당 득표수 %
이명박 한나라당 11,492,389 48.67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6,174,681 26.14
 
이회창 무소속 3,559,963 15.07
 
문국현 창조한국당 1,375,498 5.82
 
권영길 민주노동당 712,121 3.01
 
이인제 민주당 160,708 0.68
 
허경영 경제공화당 96,756 0.40
 
금민 한국사회당 18,223 0.07
 
전관 새시대참사람연합 7,161 0.03
 
무효표 119,974
총 투표수 23,732,854 100
등록된 투표자수/투표율 37,672,121 62.9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지역별 득표율[편집]

지역 / 시 · 도
이명박
한나라당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이회창
무소속
득표수 % 득표수 % 득표수 %
수도권 서울특별시 2,689,162 53.23% 1,237,812 24.50% 596,226 11.80%
인천광역시 593,283 49.22% 286,565 23.77% 183,057 15.18%
경기도 2,603,443 51.88% 1,181,936 23.55% 670,742 13.36%
강원도 376,004 51.96% 136,668 18.88% 127,102 17.56%
충청도 대전광역시 246,008 36.28% 159,700 23.55% 195,957 28.90%
충청북도 289,499 41.58% 165,637 23.79% 162,750 23.38%
충청남도 313,693 34.26% 192,999 21.08% 304,259 33.23%
호남
(전라도)
광주광역시 56,875 8.59% 527,588 79.75% 22,520 3.40%
전라북도 86,149 9.04% 777,236 81.60% 34,630 3.60%
전라남도 88,834 9.22% 757,309 78.65% 34,790 3.61%
영남
(경상도)
부산광역시 1,018,715 57.90% 236,708 13.45% 346,319 19.68%
울산광역시 279,891 53.97% 70,736 13.64% 90,905 17.52%
경상남도 843,662 55.02% 189,463 12.35% 329,486 21.48%
대구광역시 876,719 69.37% 75,932 6.00% 228,199 18.05%
경상북도 1,033,957 72.58% 96,822 6.79% 195,526 13.72%
제주특별자치도 96,495 38.67% 81,570 32.69% 37,495 15.02%
지역별 최다 득표자는 진한색으로, 33%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전한 후보는 연한색으로 배경을 처리하였다.
지역별 득표수


  • 수도권 (+318만 표): 이명박은 인구 최대 밀집지역인 수도권에서 몰표를 받으면서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다. 수도권은 여러 대통령선거들에서 한쪽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신중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이번 선거에서만큼은 예외적으로 이명박 후보의 득표수가 정동영 후보의 두 배를 넘는 기적이 일어났다. 특히 이명박이 서울시장으로 활약해준 덕분에, 진보지역으로 분류되던 서울에서도 53%에 달하는 과반수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서울에서 보수 후보가 다득표에 성공한 것은 1956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 영남 (+383만 표)
    • 부산, 울산, 경남: 지난 선거에 비교해 볼 때 득표율상의 큰 변화는 없었다. 이는 노무현이 당선된 지난 선거를 계기로 부산, 울산, 경남지역이 상당히 진보화되었음을 보여준다.
    • 대구, 경북: 특히 경북 지역에서의 한나라당 후보 득표율 증가가 두드러졌다(62%→73%). 이 현상은 이명박 후보의 고향이 경북 포항이라는 점과 관련 있다.
  • 호남 (-183만 표): 정동영은 이 와중에도 호남지역에서 80% 정도의 득표율을 확보하였으나, 호남의 유례없이 저조한 투표열기 속에 선거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 충청 (+33만 표): 이명박은 서울시장 시절 행정수도 이전 반대 경력이 있는 만큼 충청지역에서 30%대의 낮은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이회창의 연고지인 충남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이회창 후보에게 겨우 9434표 차이로 다득표에 성공하였다.
  • 강원 (+24만 표): 정통 보수 지역의 위력을 과시했다.
  • 제주 (+1만 표): 전통적인 진보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간발의 차로 한나라당의 편을 들어주었다.

선거 이후[편집]

이명박이 1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이명박정부(실용정부)를 출범시켰다. 작은 정부, 시장경제체제를 기본 이념으로 경제살리기에 노력을 쏟았다.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어려운 상황에도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빠른 경제성장률 회복을 보여주며 경제는 상당히 선방하였다. 한반도 대운하 공약은 국민들의 반발을 감안하여 백지화되고,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대체되었다.

박근혜는 이명박 대통령 및 한나라당 내 친이명박계 인사들을 견제하며 차기 대통령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해 나갔다.

애초부터 콩가루 집안이던 대통합민주신당은 대선 참패 이후 급속도로 와해되어갔다. 이게 다 친노세력 때문이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면서 친노세력은 쫓겨났고, 민주당과 통합하여 통합민주당을 결성(2008년 2월)하게 된다. 정동영은 애초에 대통령이 될 자질이 없었다는 평을 받아 당내 입지가 줄어들었다. 제18대 총선(2008년)에서는 서울 동작구에 출마하였으나 정몽준에게 패하는 굴욕을 다시 맛보았다.

이회창은 이명박 대통령을 좌파적이라고 비난하며 정통 우익 보수를 표방하는 자유선진당을 창당(2008년 2월)하였다. 자유선진당은 충청도를 정치적 기반으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