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제5대 대통령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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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대 대통령선거 당시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의 신문 광고

대한민국의 제5대 대통령선거 대한민국에서 1963년 10월 15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이다.

배경[편집]

윤보선 대통령 추대와 장면 내각 조직으로 민주당이 정권을 잡자 사회는 갑작스런 혼란 상태에 빠졌다. 오랜 기간의 자유당 통치 시대가 끝나자 그동안 억눌려있던 여러 사회세력들이 각자의 정치적 요구를 내세웠기 때문으로, 이 시기의 대한민국은 끊임없는 데모와 부정부패로 몸살을 앓았다. 이를 틈타 김일성 장군님 만세!를 외치는 공산통일세력마저 버젓이 활동하고, 대학가에는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구호가 유행하는 등 사회의 혼란상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 때만 해도 북한이 남한보다 잘살았으니... 민주당 정권은 이러한 사회 혼란을 수습하기는커녕 당 내부의 계파싸움에만 치중하고 있었다. 결국 이는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5·16 군사정변은 간단히 말해 박정희를 비롯한 군인들이 “나라꼴이 너무 엉망이라 우리 군인들이 대신 나라를 통치하겠다!”며 청와대로 돌격하여 윤보선 대통령을 내쫓고 여당인 민주당을 해산시켜 버린 것이다.

덕분에 발등에 떨어진 불은 껐으나, 멀쩡히 있는 대통령을 내쫓고 총칼로 민주국가의 정권을 빼앗는 행동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는 상당한 논란거리가 되었다. 그래서 박정희는 5·16 군사정변에 대한 정당성을 국민들에게 물을 겸, 민정이양 방식으로 제5대 대통령선거를 치르기로 한다.

전개[편집]

군사정변을 주도한 박정희는 일찍이 선거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반면, 야권 측에서는 모종의 갈등과 대립 끝에 겨우 윤보선을 야권 단일 후보로 내세우는데 성공했다. 따라서 이 선거는 군사정변 주도자 박정희 VS 민주세력 단일후보 윤보선의 2파전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민주공화당(박정희) 측에서는 정치안정과 경제발전을 모토로, 황소 그림을 내세우며 새 일꾼에 한 표 주어 황소같이 부려보자!를 슬로건으로 하였다. 하지만 당시 국민들의 정서가 군사정변에 대해 비우호적이었기 때문에, 윤보선 후보가 다소 유리한 상황에 있었다. 그러나 윤보선은 군사정변의 정당성이나 박정희의 친일 경력은 별 문제 삼지 않고, 박정희의 남로당 활동 경력을 문제 삼아 박정희를 빨갱이로 몰아가는 네거티브+색깔론 선거 전략을 펼쳤다. 하지만 이 희대의 개병신같은 선거 전략은 윤보선을 극우주의자 이미지로 만들어버렸으며, 윤보선은 매카시즘이라는 비판을 떠안아야 했다.

선거 결과[편집]

윤보선의 자살골에 가까운 선거 전략에도 불구하고, 국민정서가 군사정변에 비우호적이었던 터라, 선거는 초접전으로 치러졌다. 다시 말하면 다 차려놓은 밥상을 윤보선이 뒤엎은 꼴 박정희가 득표율 46.6%, 윤보선이 득표율 45.1%을 기록하면서 겨우 15만 6026표 차이로 박정희가 신승을 거두었다. 이는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역사상 최소 표 차 승리이다.

후보자 정당 득표수 %
박정희 민주공화당 4,702,640 46.64
 
윤보선 민정당 4,546,614 45.09
 
오재영 추풍회 408,664 4.05
 
변영태 정민회 224,443 2.22
 
장이석 신흥당 198,837 1.97
 
무효표 954,977
총 투표수 11,036,175 100
등록된 투표자수/투표율 12,985,015 85.0

지역별 득표율[편집]

지역 / 시 · 도
박정희
민주공화당
윤보선
민정당
득표수 % 득표수 %
수도권 서울특별시 371,627 30.17% 802,052 65.12%
경기도 384,764 33.05% 661,984 56.87%
강원도 296,711 39.57% 368,092 49.09%
충청도 충청북도 202,789 39.78% 249,397 48.92%
충청남도 405,077 40.78% 490,663 49.40%
호남
(전라도)
전라북도 408,556 49.43% 343,171 41.52%
전라남도 765,712 57.22% 480,800 35.93%
영남
(경상도)
부산직할시 242,779 48.20% 239,083 47.47%
경상북도 837,124 55.64% 543,392 36.12%
경상남도 706,079 61.71% 341,971 29.89%
제주도 81,422 69.88% 26,009 22.32%
지역별 최다 득표자는 진한색으로,
4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전한 후보는 연한색으로 배경을 처리하였다.
지역별 득표수

지역별 구도가 나타난 첫 선거이다. 그러나 이 선거에서 나타난 지역별 구도는 요즘과 같은 동/서구도가 아닌 남/북 구도로 나타났으며, 지역 이기주의나 지역감정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수도권과 강원도, 충청도에서는 윤보선의 득표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특히, 5.16 군사정변을 면전에서 겪은 서울에서는 65%의 높은 지지율로 민정당의 윤보선을 밀어주었다. 보수 성향이 강한 강원도와 충청도에서도 윤보선이 박정희보다 더 많은 득표수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진보 성향이 강한 영남과 호남, 그리고 제주 지역에서는 밑도 끝도 없는 빨갱이 타령, 색깔공세를 펼친 윤보선 후보에게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이 당시는 이촌향도 현상이 일어나지 전이라서, 영호남의 인구가 수도권의 인구를 압도하고 있었다. 따라서 박정희는 수도권에서 크게 패하고도 영호남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가까스로 당선될 수 있었다. 제주 4.3 사태 당시 민간인이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 죽은 것을 경험한 제주 지역에서는 특히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어 70%에 달하는 높은 지지율로 박정희 후보를 밀어 주었다.

선거 이후[편집]

이로서 박정희의 ‘공식적인’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었다. 박정희는 반공을 내세우며 국내외의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였고,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을 이끌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개인의 자유는 억압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민정당과 윤보선의 후손들은 다 이긴 선거에 코 빠뜨리는 짓을 반복하게 된다.

선거 직후 윤보선(민정당) 측에서는 이 선거를 부정선거로 정의하며 선거 무효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선거는 공정하게 치러졌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