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핑커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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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핑커튼(영어: Allan Pinkerton, 1819년 8월 25일 ~ 1884년 7월 1일)은 미국탐정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핑커튼 탐정 사무소라는 곳을 기점으로 활동하였으며, 애이브러햄 링컨암살 기도 음모를 알아내어 후에 그의 경호를 맡기도 했다.

개요 및 생애[편집]

앨런 핑커튼은 영국 스코틀랜드의 글랜스고라는 곳에서 한 직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8살때 아버지를 잃은 후에 학교를 그만두고 배럴 제조 견습공으로 일하던 도중 노동자 운동에 참여하게 되나 1839년에 감옥에 갇힌 동지를 구출하려다 실패하여 체포령이 떨어지자 1842년 미국으로 도주하였다.

미국의 시카고에서 맥주 통을 만드는 가게를 열어 당시 흑인 노예들이 북부로 도망치는 것을 돕던 도중에 위조업자들이 동전을 위조하는 것을 목격하게되고, 동전 제조자들을 일망타진하는 성과를 이루면서 케인 카운티의 보안관의 요청으로 부 보안관이 되었으며, 나중에는 에드워드 러커라는 변호사와 만나 함께 규합하여 1850년에 핑커튼 사립 탐정 사무소를 설립한다.

앨런 핑커튼은 이 사무소를 기점으로 오퍼레이터들을 고용하여 범죄 수사와 철도 경비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어느날 철도와 관련된 사건을 수사하던 도중 애이브러햄 링컨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알아채게 되고, 그 공으로 당시 발생한 남북전쟁중에 남북 각 주에대한 군사 정보를 수집하는 정부의 비밀 조직을 설립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다시 사무소로 돌아가 노동자 파업을 저지하는 업무를 맡게되었는데, 파업에 대한 과격한 진압으로 인해서 악명이 드높았다.

그러나 1893년 미국 정부에서 반-핑커튼 법이라는 것을 제정, 탐정을 고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게 하여 앨런 핑커튼과 사무소의 오퍼레이터, 즉 현장 요원들은 설자리를 잃어버렸고 FBI가 1908년 만들어지면서 범죄 수사의 업무도 상당수 FBI쪽에 뺏기고 말았다.[1]

1884년 7월 1일 시카고에서 목뼈가 부러져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그레이스 랜드 묘지에 묻혔다.

영향과 의의[편집]

1870년대에 핑커튼 사무소는 세계 최대 규모의 범죄자 사진과 범죄 데이터 베이스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사립 탐정을 의미하는 ‘Private Eye’라는 용어가 이 사무소의 로고인 ‘모두 보는 눈’(All-Seeing Eye)에서 유래하였다.

또한 그가 이끈 정부의 비밀 조직은 현재의 대통령 경호실을 탄생시켰으며, 셜록홈즈 시리즈나 경제학쪽에서도 언급된바 있다.[2] 그리고 현재에도 30개국에 핑커튼 사무소가 건재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전설적인 탐정으로 회자되고 있다.

관련 문서[편집]

주석[편집]

  1. ^ 그러나 FBI가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전국적인 규모의 다른 탐정사들과 연락망을 구축했으며, 이를 통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 베이스 구축으로 전국 규모의 서비스를 시작했기 때문에 다소 피해는 있었지만 사무소는 계속 유지되었으며 현재도 건재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핑커튼 사립 탐정 사무소 문서 참조
  2. ^ 왜 뜬금없이 경제학쪽에서 언급되는가 하면, 핑커튼 사무소에서 노동자 파업을 저지하는 업무를 20세기 중반까지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홈스테드 사건에서는 과격한 진압으로 노동자 9명이 사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