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영가

흑인 영가백인이나 다른 흑인들에게 강제로 납치를 당해 미국으로 팔려온 흑인 노예들의 노래다.

역사[편집]

흑인 영가의 역사에 대해 소개를 하겠다.

1492년, 콜럼버스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해서 신대륙이 유명해졌다. 그 때문에 많은 백인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했다. 그런데 신대륙에서 목화 농사를 짓거나 사금을 줍거나 광산에서 자원을 캐거나 사탕수수 농사를 짓는 데에는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다. 결국 이들 백인들은 노동력을 쉽고 싸게 얻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사서 데리고 왔다. 당시 흑인들이 처음에 백인들 농장이나 광산에서 일하면서 불렀던 노래는 노동요이다. 노동요는 이들이 끌려온 서아프리카 지역의 음악과 유사했다.

신기하게도 노동요는 매기고 받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국악과 비슷한 것이다.

1800년대 초에 들어서자, 많은 흑인 노예들이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 이들은 기독교의 구약성경과 자신들의 토착 음악인 노동요를 적절히 융합하였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흑인 영가이다.

기존 노동요와 새로 생긴 흑인 영가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공통점으로는 둘 다 서아프리카 음악과 비슷하며 기존 서양 음악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노동요는 기독교적 요소가 없지만 흑인 영가는 기독교적인 내용이 많다. 노동요는 단순히 노동의 고통을 잊기 위해 불렀지만 흑인 영가는 그 뿐만 아니라 백인에 대한 저항 의지와 자유에 대한 열정을 표출하였다.

흑인 영가의 유명세가 점점 커지자 예전에는 입에서 입으로만 전수되었던 흑인 영가가 문헌이나 악보로 남게 되었다. 최초의 흑인 영가 관련 기록은 1816년에 남았다. 최초의 흑인 영가 악보는 1862년에 생겼다. 그런데 1865년에 미국 남북 전쟁에서 북부가 이겨서 미국 전역의 흑인 노예가 해방이 되자 많은 흑인들이 자유를 찾았다. 이후 자유를 찾은 흑인들은 흑인 영가 연주회 등을 많이 열었고 이 때문에 흑인 영가이 더 유명해져서 유럽까지 그 명성이 전해졌다. 대한민국에는 1970년대에 기독교를 통해 알려졌다.

성격[편집]

흑인 영가는 기본적으로 서아프리카 흑인들의 전통 음악을 기반으로 했지만 거기에 구약 성서의 내용을 덧붙였다. 따라서 종교적인 색채를 가진다.

또한 백인들의 압제에 저항하기 위해 저항적이고 의지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흑인 영가는 백인들로부터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강제 노동을 하던 흑인 노예들이 고통을 잊고자 불렀기 때문이다.

흑인 영가는 4분의 4 박자로 이루어져 있다. 주로 쓰는 표현 기법으로는, 늘임표를 많이 사용해서 늘임표 뒷부분의 가사를 강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