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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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기(한자: 鄭菜基, 1962년 - 2013년)는 한국의 남성 인권운동가이자 대학 교수였다. 한국 남성 인권운동의 창시자로, 1994년 한국에 최초로 남성운동 매스큘리즘을 소개했다.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교육학과와 심리학과, 경기대학교 유아교육과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1999년 10월 2일부터 성재기, 한지환, 김재경, 이경수 등과 군 가산점 부활 운동을 주도했다.

활동[편집]

전라남도 광양 출신이다.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대학원 과정에 있으면서 모교인 건국대학교, 그밖에 경기대학교, 명지대학교 등에 출강하였다. 전공은 교육학이지만 심리학 등을 강의하기도 했다.

1992년 일본의 남성인권단체인 일본남성협회의 정회원이 되었고, 1994년 한국에 최초로 남권 운동인 매스큘리즘을 소개하고, 남권 운동 외에 남성 인권 운동을 시작했다. 남권 운동과 남성 인권 운동을 처음 소개했지만, 더 알려진 것은 1999년부터 남성 운동에 참여한 성재기. 그리고 방송에도 출연했다가 여성 시청자나 페미니스트들의 반발로 생방송 중 중도하차 하는 봉변까지 당했다.

1999년 10월 2일부터 군 가산점 부활 운동에 성재기, 한지환, 김재경(가수 2명과는 동명이인인 남성 운동가이다.), 이경수 등과 함께 군 가산점 부활 운동을 벌였다. 당시 이화여자대학교 졸업생 이유진과 이화여자대학교 4학년 재학생 조경옥, 박은주, 김정원, 김은정 및 연세대학교 4학년 재학생 장애인 김형수 등 6명이 군 가산점에 대한 위헌신청을 대법원에 제기하여 승소했다.[1]

군 가산점 부활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성재기, 한지환 등과 함께 군 가산점 부활 운동의 주요 지도자로 명성을 날렸다. 한지환은 주로 문화미래 이프 등과 여성단체 사이트에서, 정채기 교수는 방송과 강연으로, 성재기는 선언문 낭독과 거리 시위, 인터넷 댓글 논쟁을 벌였다.

2003년~2005년에는 호주제 폐지 여론이 나타났는데, 이때 정채기는 호주제 폐지에 찬성했다. 그러나 성재기는 호주제 폐지에 반대하여 갈등했다. 이후 강원관광대학, 태성대학, 건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활동에 전념했고, 서울에서 하남시로 이사한 뒤 하남시 지역 시민단체 모임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태성대학 평생교육원장을 지내다가 2013년 초 사고로 사망하였다.

기타[편집]

성재기와 이름이 비슷하지만 견해가 달랐다. 정채기 교수는 주로 아버지 운동, 가부장제 반대, 남편의 가사 노동 참여, 좋은 아빠, 다정한 아빠 되기 운동을 하였다. 그에 반해 성재기는 군 가산점 부활, 가부장 권위 확립을 주장하다가, 호주제 폐지 확정 이후 남성 해방론을 주장하며 이혼하고 싶을 때 마음대로 이혼할 자유, 결혼하지 않을 자유를 주장했다. 한편 이혼 견해를 놓고는 남성연대의 창립자 성재기와 갈등했다.[2]

주석[편집]

  1. ^ 군 가산점은 2001년 10월 2일부로 폐지 확정
  2. ^ 성재기는 군 가산점 폐지 이후 적극적으로 남성이 가정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