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 | 냉전기 최초의 열전 | ” |
한국전쟁(영어: Korean War)은 남한과 북한간의 전쟁이다. 전쟁이 시작된 것은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 30분이었으며, 전쟁이 끝난(정확히 말하면, 종전된 게 아니라 휴전.) 것은 1953년 7월 27일이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한국인들이 사망했으며, 한민족의 역사에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아픔을 남겼다.
북한의 김일성은 중국과 러시아의 도움으로 전쟁을 시작했으며, 남한에서는 이승만의 지휘아래 국제연합(UN), 특히 미국의 도움을 받아 전쟁을 치렀다.
결론 - 6·25는 무효다. 다시 한 번 붙어보자! 휴전 협정을 맺었다.
그래서 엄밀히 따지자면, 지금도 남한과 북한은 전쟁 중이다. 실제로 북한이 다시 쳐들어올 가능성이 있으므로, 미군이 아직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것이다.
목차
원인[편집]
한국전쟁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함께 작용한 결과이다. 몇 가지 주요 원인만 살펴보도록 하자.
냉전[편집]
냉전은 한국 전쟁을 일으킨 중요한 원인이다. 쉽게 말해, 당시 미국과 소련 사이엔 극도의 긴장감 같은 게 있었는데, 그러한 미국과 소련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결국 터진 곳이 한국이었다는 것이다.
애치슨 라인 설정[편집]
미국의 극동방위선이 남한에 포함되지 않았다.
주요 상황[편집]
1950년 6월 25일[편집]
북한이 남한을 기습공격. 전쟁 직후 인민군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왔다. 결국 부산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을 점령. 한마디로 한방에 훅 갔다. 오죽하면 이승만이 일본에 망명정부를 만들려고 했겠는가?(확인)
1950년 7월[편집]
UN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했다. 이 작전은 큰 성공을 거두어, 이번엔 역으로 UN군이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가게 된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까지 도달한 것이다. 중국이 끝판왕 이었음. 이에 중국은 이에 엄청난 위협을 받게 된다.
1950년 10월[편집]
중국이 북한 편에 참전하게 된다.
1951년 2월[편집]
전쟁은 계속되지만, 한편에선 평화 회담이 진행되었다.
1953년 7월 27일[편집]
평화 회담의 결과로, 종전이 아닌 휴전이 선포된다. 이에 따라 UN군을 비롯한 다른 국가의 병력은 철수하게 된다.
결과[편집]
나라 | 잘한 것 | 잘 못한 것 |
---|---|---|
미국 | 반공주의를 굳건히 했다. | 너무 강경한 입장 탓에, 다른 나라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
UN | UN을 통한 국제 협력의 첫 성공작을 만들었다. | 평화 회담이 아닌 힘에 의한 승리였다. |
남한 |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지켜냈다. | 막대한 재산과 국민을 잃게 되었다. 통일의 기회를 잃어버렸다. |
북한 | 중국과 동맹 관계를 맺게 되었다. | 막대한 재산과 국민을 잃게 되었다. 통일의 기회를 잃어버렸다. |
중국 | 국내외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 소련과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
소련 | 미국을 상대로 공군력을 시험해 볼 수 있었다. |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었으며, 큰 금전적 손실이 있었다. |
통계[편집]
병력[편집]
UN 군[편집]
- 대한민국 - 590,909명
- 미국 - 480,002
- 영국 - 62,998
- 캐나다 - 26,791
- 호주 - 16,999
- 터키 - 5,000
- 필리핀 - 7,002
- 네덜란드 - 3,971
- 프랑스 - 3,425
- 뉴질랜드 - 1,384
- 태국 - 1,239
- 에티오피아 - 1,283
- 그리스 - 1,249
- 콜롬비아 - 1,062
- 벨기에 - 891
- 남아프리카 공화국 - 873
- 룩셈부르크 - 44
- 총 - 대략 968,000명의 군인이 투입.
공산주의 진영[편집]
- 북한 - 260,108
- 중국 - 780,092
- 소련 - 25,972
- 총 - 대략 1,065,000명의 군인이 투입.
피해[편집]
UN 군[편집]
- 대한민국 - 58,121명 사망 - 175,802명 부상
- 미국 - 36,503명 사망 - 92,073명 부상
- 터키 - 721명 사망 - 2,109명 부상
- 캐나다 - 507명 사망 - 1,001명 부상
- 호주 - 501명 사망 - 1,192명 부상
- 뉴질랜드 - 41명 사망
- 프랑스 - 100여 명 가량 사망
- 룩셈부르크 - 2명 사망 - 2명 부상
공산주의 진영[편집]
- 북한 - 214,900명 사망
- 중국 - 300,000여 명 가량 사망
- 소련 - 300여 명 가량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