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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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다리
호국의다리.jpg
호국의 다리
다른이름 구 왜관철교
횡단 낙동강
위치 경상북도 칠곡군
관리 칠곡군
연장 469m
너비 4.5m
높이 8m
착공일 1901년
개통일 1905년 1월
이전 다리 왜관교
다음 다리 제2왜관교

호국의 다리 또는 구 왜관철교경상북도 칠곡군에 있는 다리로서, 낙동강을 가로질러 왜관읍과 약목면을 연결한다. 1905년에 철도교량으로 개통하였으며, 등록문화재 406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인도교로 활용되고 있다.

역사[편집]

호국의 다리의 원래 명칭은 왜관철교로서, 1905년에 개통한 경부선의 철도교량이었다. 1944년에 경부선이 복선화되면서 새로운 왜관철교가 개통하였고, 구 왜관철교는 철도교량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구 왜관철교는 이후 자동차가 다니는 교량으로 활용되었다.

부식과 노후 문제로 인해 1979년에 통행이 금지되었다가, 칠곡군민들의 요구로 1993년에 인도(人道)교로 개통하였다.

한국전쟁[편집]

칠곡호국평화전시관에 전시된 호국의 다리 모형

구 왜관철교는 한국전쟁과 관련이 깊은 장소이다. 한국전쟁 개전 초기였던 1950년 8월 3일, 북한군이 낙동강을 건너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미국 제1기병 사단장 로버트 게이(Robert R. Gay)의 명령에 따라 왜관철교를 포함한 낙동강의 모든 다리를 폭파하였다. 이후 왜관철교 인근에서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인민군UN군 사이에 처절한 전투가 장기간 이어졌다. 특히 8월 16일에는 B29 전투기 98대가 출격하여 북한군이 상주하던 낙동강 건너편에 폭탄을 쏟아붓는 융단폭격을 하였다. 끝내, 이곳에서 UN군이 ‘대한민국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던 낙동강 방어선 사수에 성공하면서 북한군의 진격을 막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구 왜관철교에는 호국의 다리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오늘날 칠곡군은 호국평화의 도시를 자처하고 있다.

교각 붕괴 사건[편집]

2011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장맛비로 인해 불어난 물 때문에 호국의 다리 교각 일부가 무너지면서 상판이 내려앉는 사건이 일어났다. 다리가 무너진 날이 하필이면 한국전쟁이 시작된 6월 25일이었다는 점에서 묘한 우연이 느껴진다. 비가 많이 와서 다리가 무너졌다고는 하지만, 건설된 지 100년 넘는 세월 동안 끄떡없던 다리가 무너진 사건을 놓고 책임 공방이 있었다. 지역 주민들은 당시 한창 진행 중이던 4대강 사업과의 연관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사업단 측에서는 무너진 교각의 위치가 하천 준설과는 무관한 곳이었다며 의혹을 부정하였다.[1]

인근 지역 정보[편집]

왜관역에서 북쪽으로 1km가량 떨어진 곳에 있으며, 왜관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걸린다. 호국의 다리 북쪽에는 자동차가 다니는 교량인 왜관교와 경부선 철도교량인 (신)왜관철교가 있어 기차가 낙동강을 건너는 모습도 함께 지켜볼 수 있다. 호국의 다리 인근 지역은 공원으로 꾸며져 있어 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는다.

주석[편집]

  1. ^ 6·25에 무너진 '호국의 다리', 《YTN》 2011년 6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