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왕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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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성(한자: 火旺山城) 또는 창녕 화왕산성화왕산에 있는 마안형의 산성이다. 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64호로 지정되었다.

역사[편집]

최초로 지어진 연대는 정확치 않으나,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빛벌가야 때 고성으로서 지어졌다고 하니 최소한 삼국시대나 그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는 것은 태종실록으로, 19권을 보면 화왕산을 비롯하여 오혜산, 황석산 등 경상도전라도 등지에 산성을 수축했다고 나와 있다.[1] 이후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성종 때 폐성되었다고 되어 있으나, 이후 여럿 언급되는 기록을 보면 다시 축성한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에서 언급되는 성의 규모는 다음과 같다.

둘레가 1천 2백 17보[2]인데, 안에 샘이 아홉, 못 셋이 있고, 또, 군창(軍倉)이 있다.

세종실록 150권, 지리지 경상도 경주부 창녕현

화왕산 문서에 언급된 것처럼 화왕산 자체가 군사적 요충지였기에 이 산성의 가치 또한 중했으며, 선조실록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요충으로 지세가 험고하여 요해지가 된다고 적혀 있다. 선조 101권을 보면 이영이 수성장으로 왜적을 물리쳤다고 되어 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1597년 곽재우가 경상좌도방어사로서 화안산성에서 가토 기요마사와 맞서 싸웠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의병전승비가 세워져 있다.

현재는 원래 있던 동문과 서문 중 동문만이 어느정도 형태가 보존되어 있으며 이외에도 연못 등의 시설이 남아있어 꽤나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외부링크[편집]

기타[편집]

2003년 산성에 있던 우물에서 비격진천뢰가 발굴된 바 있으며[3], 2005년에는 연못에서 호랑이뼈와 금속유물[4]이 출토되었다. 이 때 출토된 유물중 목간은 현존 최고의 부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5]

주석[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