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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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남북관계의 변천.

1950~60년대[편집]

이념의 차이로 인한 크고작은 분쟁이 계속되다가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이로 인해 남북 양국에 무수한 인명, 경제적 피해를 입혔다. 남북간의 관계는 당연히 최악으로 치달았다. 대한민국에서는 "반공주의"를 내새우며 북한과의 대립의 골을 깊게 했다. 특히 이승만 정권은 북한에 쳐들어가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북진통일"을 줄곧 주장했으나 당시 남한의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았으므로 사실상 불가능한 주장이었다. 이 당시만 해도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보다 더 좋았다.

1970년대[편집]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추진한 경제개발계획이 성공을 거두면서(한강의 기적)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의 경제력을 추월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을 "선의의 경쟁자"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편집]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시키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북한과의 교류를 늘려간다는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을 제시했으며,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 정책"을 펴며 중국사회주의 국가와의 교류를 활발히 했다.

1990년대[편집]

남북한의 UN 동시가입, 남북한의 핵 개발을 전면 포기하는 내용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하는 등 북한과의 관계에 눈에 띄는 성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남북한의 "공조, 공영"을 강조한 김영삼 대통령은 김일성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으나, 1994년 김일성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무산되었다.

2000년대[편집]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으로 남북 관계는 어느 때보다 가장 가까워졌다. 김정일과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이 정상회담을 통해 채택된 6.15 남북공동선언에서는 바람직한 남북통일의 형태를 제시했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면서 수학여행을 북한으로 가는 꿈만 같은 일이 현실화되었다. 뒤이어 노무현 대통령도 전 정권의 이러한 대북정책을 이어나가며 남북정상회담을 다시 한번 성사시켰다.

2010년대[편집]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급격하게 냉랭해졌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하여 강경책을 내세우며 북한과의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이에 따라 긴장과 대결 국면이 지속되며 남북관계는 살얼음판을 걷게 된다. 한편, 북한에서는 2011년에 김정일이 사망하고 그 자리를 김정은이 빠르게 차지하면서 북한은 3대 세습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던 중에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뒤 열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이 유화적인 태도로 급변하였다. 이에 따라 남북정상회담이 3차에 걸쳐 개최되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여기에 관심을 보이며 북미정상회담까지 개최되었으나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2년간의 짧은 훈풍은 끝나고, 남북관계는 별다른 성과 없이 다시 냉전 상태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