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

누리위키, 온 누리의 백과사전
신사임당대한민국 내 최고권 지폐인 5만원권의 화폐 도안 인물이다.
신사임당의 그림은 섬세한 아름다움을 잘 나타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년 10월 29일~1551년 5월 17일)은 조선 시대의 예술가이자 작가, 서예가, 유명 시인으로서 조선시대 대표 유학자율곡 이이의 어머니이다. 어진 어머니이면서 또한 착한 아내라는 의미의 현모양처(賢母良妻)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지금까지도 추앙받고 있다.

생애[편집]

신사임당은 강릉에 있는 외가에서 태어나 자랐다. 신사임당의 아버지인 신명화는 벼슬에 욕심이 없어 과거시험을 치지 않고 있다가, 신사임당이 13살이 되던 해에 진사가 되었으나, 벼슬에는 나가지 않았다.지금으로 치면 행정고시에 합격했지만 "그냥 내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공무원은 하기 싫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신사임당은 무남 5녀 중 첫째 딸로 태어났다. 집안에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외할아버지는 첫째 딸인 신사임당을 대신 (손녀가 아닌) 손자로 여겼다. 이러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신사임당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에는 이처럼 여성이 교육을 받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신사임당은 19살의 젊은 나이에 이원수와 결혼하였으나, 결혼 후 몇 년동안은 계속 신사임당의 고향집에서 같이 살았다. 이후 남편을 따라 경기도 파주로 갔으며 그후에도 몇 번 이사를 다녔다. 하지만 신사임당은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친정(강릉)에 자주 들렀다고 한다. 3째 아들을 낳을 때에도 친정에 갔는데, 이 때 낳은 아이가 바로 율곡 이이이다. 신사임당의 남편인 이원수는 당대의 경직된 유교문화에서 볼 수 있었던 고지식한 사람이 아니였다. 오히려 아내(신사임당)의 재능을 인정하고 아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신사임당이 친정에 자주 내려갈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다.

신사임당은 2009년부터 발행되기 시작한 50000원권의 화폐 도안 인물로 선택되었다. 신사임당은 대한민국의 화폐에 등장하는 유일한 여성이다. 참고로 신사임당의 아들인 율곡 이이는 5000원권 인물이다.매일같이 지갑 속에서 이뤄지는 모자(母子)의 재회

작품[편집]

신사임당의 미술작품에는 여성 특유의 섬세한 미적감각이 잘 드러나있다. 주로 곤충, , 나비, 포도, 물고기, 난초 같은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 하지만 불행히도, 당대의 벼슬아치나 감정사들은 신사임당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난 작품들에 대하여 그리 대단한 평가를 내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후 사람들은 신사임당의 작품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하였고, 대채로 신사임당의 작품들은 "고귀하면서도 품격있고, 고요하면서도 맑고, 여성의 미덕을 잘 드러낸 것"으로 평가를 내렸다

[편집]

  • 유대관령망친정(踰大關嶺望親庭) - 신사임당이 강릉의 친정을 떠나 대관령을 넘던 도중, 홀로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시이다.
늙으신 어머니를 고향에 두고 / 慈親鶴髮在臨瀛
서울 향해 떠나니 외로운 마음뿐 / 身向長安獨去情
돌아보니 북평촌은 아득도 한데 / 回首北坪時一望
흰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 白雲飛下暮山靑
  • 사친(思親) -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이다.
천리라 먼 고향 만 겹 봉우리 / 千里家山萬疊峰
꿈에도 안 잊히는 가고픈 마음/歸心長在夢魂中
한송정 위아래엔 두 바퀴의 달 / 寒松亭畔雙輪月
경포대 앞을 부는 한 떼의 바람 / 鏡浦臺前一陳風
모래톱 갈매기는 뫼락 흩으락 / 沙上白鷺恒聚散
물결 위 고깃배는 동으로 서로/波頭漁艇各西東
언제나 다시 강릉 길 밟아 / 何時重踏臨瀛路
색동옷 입고 어머니 슬하에서 바느질할꼬 / 綵服斑衣膝下縫

그림[편집]

초충도는 벌레를 소재로 하여 그리는 그림으로서, 일반적으로 그냥 초충도라고 하면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떠올릴 정도로 신사임당의 초충도는 유명하다. 50000원권 지폐의 배경에도 초충도가 그려져 있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