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009년에는 노무현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김수환 추기경이 사망하며 전 국민들의 추모를 받았다.

2009년2008년2010년 사이에 있는 해이다.

정치[편집]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편집]

2009년 5월 23일, 노무현대통령이 자신의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 사저 뒷편의 부엉이바위에서 투신 자살하였다. 자살 직전 남긴 유서를 통해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투신, 이후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오전 9시 30분 서거했다. 당시 박연차 게이트 등 측근비리 및 뇌물수수 관련 검찰 소환 조사를 받고 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조사로 인한 불명예로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식은 국민장으로 치러졌으며, 각 지역에 설치된 분향소마다 애도를 표하러 온 조문객들의 추모행렬이 줄을 이었다. 봉하마을에는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라는 유서 내용에 따라 묘역이 조성되었다. 누리꾼들도 댓글에 검정리본(▶◀)을 달며 추모의 뜻을 나타냈다.

미디어법 국회 통과[편집]

2009년 7월 22일,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통해 국회 본회의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미디어법을 일방적으로 강행 통과시켰다. 미디어법의 주요 내용은 그 동안 금지되었던 신문방송 진출을 허용하는 것으로, 미디어법이 통과되면서 종합편성채널을 만들기 위한 법률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그간 미디어법에 대하여 여야간 견해를 좁히지 못하고, 심한 몸싸움만 벌어진 끝에 한나라당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야당에서는 법안 처리 과정을 "날치기 통과"로 규정하고, 표결 과정에서 벌어진 재투표 및 대리투표를 문제삼아 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청구했다. 10월 29일,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표결 과정에서 야당 의원의 권리가 침해되었지만, 미디어법 통과는 유효하다"는 애매한 판결을 내리며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4대강 사업 공방[편집]

4대강 사업은 국고 22억 원이 투입될 예정인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이다. 2009년에는 4대강 사업 관련 예산이 국회 통과되었으며, 예산 문제가 해결된 4대강 사업은 더욱 박차를 가해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4대강 사업 자체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게 전개되었다. 찬성 측에서는 " 부족 해소 및 홍수피해 방지와 수질개선"을 위해서는 4대강 사업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대 측에서는 "를 쌓고, 동시에 하천 준설을 하는 것은 수질 개선이나 홍수피해 방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며, 더 나아가 4대강 사업이 결국 운하를 만들기 위한 준비작업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경제[편집]

5만원권 도입[편집]

2009년 6월 23일, 종전 최고액권인 1만원권의 5배의 가치를 갖는 고액권인 5만원권이 시중에 유통되었다. 5만원권 지폐 도안인물으로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이 채택되었다. 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화폐 도안으로 채택된 것은 양성평등을 고려해서였다. 이로서 10만원권의 수표 사용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이에 따라 수표발행에 따른 한국은행의 비용부담이 상당 부분 절감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화폐 이용자들의 편리성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었으나, 한편으로는 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 물가 상승의 원인이 될 수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글로벌 경제위기 탈출[편집]

G20 정상회의 등 국제적인 경제 공조에 의해 세계 각국의 경제성장률이 상승하며 경제 위기 탈출 양상을 보였다. 이에 따라 출구전략이 세계경제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즉, 그동안 사용했던 경기부양책을 서서히 줄여나가면서 경제에는 부담을 주지 않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 위기 우려가 확산됨에 따라 기업 설비투자는 오히려 줄어드는 등 경제위기 지속 조짐도 일부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른바 저탄소 녹색성장을 경제 위기 탈출 해법으로 제시하였다. 즉 친환경 산업을 전략 육성시켜 미래 교토 의정서 발효에 따른 경제손실을 줄이는 효과를 주는 한편 지금 당장의 경제성장도 이루자는 것이다.

쌍용자동차 노조 파업[편집]

2009년 5월 29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등에서 점거파업이 발생하여 협상이 타결된 2009년 8월 10일까지 77일 동안 지속되었다. 파업은 기업 사정 악화로 인한 회사측의 직원 정리해고 방침에 대해 노조에서 반발하며 일어났으며, 해당 기간 동안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면서 기업에 많은 손실을 가져왔다. 파업 과정에서 많은 노조원 및 경찰이 물리적 충돌을 빚으며 부상자가 속출했다. 파업 이후 노조 관계자 44명에게 점거파업 및 폭력행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며, 5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되었다. 이후 9월 8일 노조원을 상대로 치러진 투표 결과 73.1%의 찬성으로 쌍용차 노조는 민주노총을 탈퇴하게 되었다.

사회[편집]

신종플루 유행[편집]

4월말, 멕시코에서 시작된 신종플루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1만 15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51년만에 처음으로 대유행을 선언하며 신종플루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대한민국에서도 5월 2일 멕시코에서 입국한 여성이 첫 국내 감염자로 확인된 이래 학교 등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국내에서만 2009년 말까지 2만여 명이 신종플루 판정을 받았다. 이에 정부에서는 신종플루 백신타미플루 접종을 실시했으며, 수능 시험장에서는 신종플루에 걸린 수험생들이 격리된 고사장에서 따로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다행히도 시간에 지남에 따라 신종플루는 계절감기 수준으로 약화되며 치사율이 하락, 신종플루 감염으로 인한 사망에 대한 우려는 줄어들었다.

조두순(나영이) 사건[편집]

등교하는 9세 여야(나영이)를 만취 상태의 남성(조두순, 57)이 화장실로 끌고 간 후 강제로 추행해 불구로 만든 사건. 해당 사건이 일어난 것은 2008년 12월 이었으나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다가 2009년 9월에 KBS 1TV 《시사기획 쌈》에서 해당 사건을 소개하면서 전국민들에게 알려졌다. 당시 사건으로 피해를 당한 아이는 생식기가 80% 소실되고 대장항문이 영구 소실, 심각한 우울증에도 걸렸으나, 형량은 범인이 만취상태라는 점을 감안하여 12년 형 선고에 그쳤다. 아동 성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특히 성범죄자의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였다.

용산참사[편집]

1월 20일, 서울 용산 재개발지역 상가건물에서 발생한 사건. 경찰이 철거민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숨졌으며 23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은 사퇴하였다. 화재의 발생원인과 보상비 문제로 이후에도 마찰이 계속되다가 2009년 12월 30일,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되며 재개발 사업자가 장례비용 및 위로금, 보상금을 모두 부담하기로 했다. 사회적으로는 계층 갈등, 밀어붙이기식 개발, 공권력 투입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다.

문화[편집]

네이버 뉴스캐스트 서비스 실시[편집]

국내 최대 포탈사이트인 네이버에서 뉴스캐스트 서비스를 2009년 1월부터 제공하였다. 기존 포털사이트의 뉴스는 포털사이트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뉴스 페이지가 있어 포털사이트에서 일방적으로 뉴스를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이에 비해 뉴스캐스트 서비스는 포털사이트 메인화면에 다양한 언론사에서 직접 선택하고 편집한 기사의 제목을 노출시키고, 해당 기사의 제목을 클릭하면 각 언론사 홈페이지의 뉴스 사이트로 링크된다. 이로 인해 각 언론사에서는 경쟁적으로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한 경쟁이 심화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이른바 낚시형 기사의 양산이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네이버 측에서는 뉴스캐스트 옴부즈맨을 도입하여 선정적인 기사들을 블라인드 시킬 수 있도록 만들었다.

키 180cm 이하 루저 공방[편집]

2009년 11월 KBS2의 방송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미수다)에 게스트로 출연한 한 여대생이 "키가 180cm가 되지 않는 남자루저(loser)"라는 비하성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엇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해당 내용이 인권침해 소지가 있고 외모지상주의적 사회 분위기 형성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해당 방송에 대한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이에 KBS 측에서는 해당 내용에 대한 사과 방송을 내보냈고 <미수다> 제작진을 전부 교체한 뒤 <미수다2>로 개편하였다. 한편 루저라는 말은 인터넷상에서 급속도로 확산되며 신조어로 자리잡았다.

막걸리 열풍[편집]

농촌에서 노인들이나 먹는 로 치부되었던 막걸리가 20, 3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막걸리 열풍을 일으키며 대한민국의 음주문화 판도를 바꿔놓았다. 막걸리 소비량은 15만 8390kl(2009년 10월 까지 기준)를 기록하며 전년도에 비해 40% 가까이 수직상승했고, 막걸리 수출액도 30% 가량 증가했다. 이러한 막걸리 열풍의 요인으로는 웰빙 문화 확산, 전통으로의 회귀, 낮은 도수로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점 등이 꼽혔다. 덕분에 소주양주의 소비는 크게 줄어들었으며, 특히 포도주의 수입량이 IMF 사태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