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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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군
鐵原郡
백마고지 전적비
백마고지 전적비
행정
지역 강원특별자치도
행정구역 4읍 7면
군청소재지 갈말읍 삼부연로 51
군수 이현종 (국민의힘)
인구
인구 40,646 명 (2024년)
지리
면적 890 km2
상징
군목 잣나무
군화 철쭉
군조 두루미
기타
지역번호 033

철원군(한자: 鐵原郡)은 강원특별자치도의 서북부에 위치한 이다. 북한과의 접경지역이다.

역사[편집]

태봉국의 수도[편집]

철원의 위엄

철원군은 궁예가 세운 태봉국(후고구려)의 수도로 15년간 기능하였다. 하지만 철원을 수도로 천도한 것은 명백한 궁예의 실책으로 평가된다. 일단, 궁예가 수도를 새로운 곳으로 옮긴 이유는 개성을 중심으로 한 호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철원은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였고, 철원평야가 있어 나름 터도 넓었으니 수도로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철원이 수도로 기능하기에는 치명적인 문제점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문제가 된 것은 겨울의 혹독한 추위였다. 철원은 내륙 고지대에 있는데다가 분지 지형의 영향으로 일교차 및 연교차가 크다. 그 결과 철원의 1월 평균 최저기온은 -13℃로, 위도가 훨씬 높은 평양, 함흥, 신의주보다도 더 낮게 나타난다. 그 밖에도 철원은 협곡 아래에 위치한 한탄강의 특성상 을 통한 왕래가 어렵고 수자원이 부족하여 농업에도 불리했다. 결국 궁예의 철원 천도는 궁예가 왕건에 의해 쫓겨나는데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오늘날 궁예도성과 궁예의 무덤 등 태봉국 관련 문화유적들은 야속하게도 현재 DMZ 내에 있어 일반인들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한국전쟁[편집]

노동당사

철원군은 1945년 분단 당시 원래 북한에 소속되었던 지역이다.

철원군은 한국전쟁 중 치열한 공방전이 여럿 벌어진 격전지 중 하나로, 전쟁 중에 영토의 주인이 여러번 바뀌었다. 1951년, 전선이 안정화되면서 철원군은 김화군, 평강군과 함께 철의 삼각지로 불렸다. 철의 삼각지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남북은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화살머리고지 전투(1952년 10월)와 백마고지 전투(1952년 10월), 삼각고지 전투(1952년 11월) 등의 전투를 벌였다.

휴전협정이 맺어지면서 휴전선이 철원군을 관통하게 되었다. 그 결과 철원군은 북한의 철원군과 남한의 철원군으로 각각 갈라지게 되었다.

철원군에는 한국전쟁과 관련된 유적이 많은데, 이는 오늘날 관광명소가 되었다. 대표적인 관련 관광명소로는 월정리역, 노동당사, 제2땅굴 등이 있다.

관광[편집]

고석정 꽃밭

철원은 강원도임에도 불구하고 지리적으로 수도권과 가까워 수도권 주민의 당일치기 여행지로 인기가 높다.

한탄강[편집]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 위치해 있다. 1977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고석정 바위가 대표적인 관광지로 손꼽힌다. 최근에는 주상절리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잔도가 2021년 개장하여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고석정 주변으로는 가을철마다 꽃밭을 조성하여 함께 가보기 좋다.

제2땅굴[편집]

1975년 3월 19일 발견된 땅굴로, 북한이 남한을 기습적으로 침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총 길이는 3.5km에 이르며, 깊이는 50~160m 사이이다.

철원평화전망대[편집]

철원평화전망대는 동송읍 중강리에 있는 전망대로서, 2007년 11월 개관하였다. 3층 규모로서, 1층은 전시관, 2층은 전망대로 이용되고 있다. 2층의 전망대에서는 DMZ의 생태환경과 궁예 도성지, 북한의 선전마을 등을 전망할 수 있다.

백마고지 전적비[편집]

10일간 이어진 백마고지 전투에서는 백마고지의 주인이 24번 바뀔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 당시 이곳에 30만 두가 넘는 포탄이 떨어지면서 지형 자체가 크게 바뀌게 되었다. 파괴된 능선의 모양이 백마가 누워 있는 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백마고지라는 명칭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