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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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浮石寺

부석사 무량수전
종파 조계종
건립년대 676년
창건자 의상
문화재 국보 제17호(석등), 국보 제18호(무량수전), 국보 제19호(조사당), 국보 제45호(소조여래좌상), 국보 제46호(조사당 벽화)
국가 태극기.png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북도 영주시 봉황산

부석사(한자: 浮石寺)는 경상북도 영주시 봉황산 기슭에 있는 이다. 2018년에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역사[편집]

676년,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 문무대왕의 명령으로 의상이 부석사를 창건하였다. 의상은 당나라에서 배운 화엄학을 바탕으로 영주 부석사를 창건하고 이곳을 한국 화엄종의 중심 사찰로 만들었다. 그래서 한국 화엄종을 다른 말로 부석종(浮石宗)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징[편집]

부석사 안양루

백두대간의 한 귀퉁이인 높이 818m의 봉황산 기슭에 있는 절이다.

2018년에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부석사는 5개의 국보를 보유한 문화재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수많은 사찰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손꼽힌다. 한국의 미술사학자인 최순우 선생은 1994년 발간된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다음과 같은 말로 예찬하였다.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많은 사람이 찾는 사찰인 만큼 주차장 등 부대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주차요금은 무조건 하루 단위로 받는다. 주차장에서 부석사 천왕문까지는 600m 거리로,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오르막길이다. 길 자체는 넓고 잘 정비되어 있지만, 경사가 있는 편이어서 가벼운 등산 같은 느낌이 든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면 올라가는 것이 다소 힘들 수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편집]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

부석사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몇 남지 않은 고려 시대의 목조 건축물이다. 고려 중기를 대표하는 건축물로서, 현재의 무량수전은 고려 우왕 2년인 1376년에 세운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보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북 안동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우리나라에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손꼽힌다. 봉정사 극락전의 건립 연도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대체로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앞선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주요 건물 중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 있다. 따라서 부석사에 온 방문객은 일주문, 천왕문, 안양루를 거쳐 마지막으로 무량수전에 도달하게 된다. 부석사의 가람축은 무량수전을 바로 앞둔 안양루에서 꺾여 있는데, 이는 부석사 입구에서 무량수전이 곧바로 보이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즉, 부석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무량수전에 대한 신비감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스포일러 방지’ 구조이다. 방문객은 안양루 아래에 나 있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넓은 마당과 함께 무량수전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제법 큰 건물로, 부석사의 중심 건물이다. 극락세계를 다스리는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특이하게도, 불상의 위치가 정면이 아닌 서쪽에 있으며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는 극락세계가 세상의 서쪽에 있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옆면 지붕이 八모양으로 생긴 팔작지붕이다. 겹처마로 처마를 길게 빼서 건물의 위엄을 더했다. 지붕을 받치기 위한 공포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축 구조는 장식적 요소가 적고 필요한 구조만 사용해서 간결한 느낌을 준다. 기둥의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기둥으로 되어 있어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무량수전은 한국의 여러 건축물 중에서도 배흘림기둥의 효과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건축물로 손꼽힌다.

무량수전 건축물 자체의 아름다움도 그렇지만, 여기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경치도 대단히 아름답다. 한국의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내려다보는 경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안양루에 오르면 발아래로는 부석사 당우들이 낮게 내려앉아 마치도 저마다 독경을 하고 있는 듯한 자세인데, 저 멀리 산은 멀어지면서 소백산맥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이 웅대한 스케일, 소백산맥 전체를 무량수전의 앞마당인 것처럼 끌어 안은 것이다. ...(중략)... 지금까지 생각한 중에 가장 그럴듯한 것은 무량수전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를 ‘국보 제0호’로 지정해버리는 것이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