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의야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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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야구장
소재지 인천광역시 중구 도원동 6
개장 1934년
철거 2008년
표면 인조잔디
크기 좌우펜스 91m
중앙펜스 110m
펜스높이 4.8m
수용인원 12,000명

숭의야구장인천광역시 중구 도원동에 있었던 야구장이다. 도원동에 있었기 때문에 도원야구장으로 불리기도 했고, 인천에서 가장 큰 야구장이었기 때문에 인천야구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1934년 개장하였고 개장 74년만인 2008년에 철거되었다.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SK 와이번스 등 인천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야구팀의 홈구장 역할을 했다.

역사[편집]

일제강점기였던 1934년에 숭의종합운동장 야구장으로 개장하였다. 그러나 일제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전쟁에 필요한 보급품을 마련하기 위해 야구장에 설치된 쇠붙이들을 모두 뜯어서 공출해버리고 운동장에는 을 심어서 사실상 야구장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1964년에 대대적인 확장공사를 하여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야구장으로 재개장하였다. 이후로 인천지역 고교 야구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지역 고교팀들이 선전하면서 인천의 야구 열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1982년에 KBO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인천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야구팀 삼미 슈퍼스타즈의 홈구장이 되었다. 그러나 야구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삼미의 성적은 리그 최하위권을 맴돌았기 때문에 인천야구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숭의야구장은 1982년부터 2002년까지 줄곧 인천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야구팀의 홈구장 역할을 했다. 숭의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한 프로야구팀은 다음과 같다.

이상의 프로야구팀들의 성적이 대부분 지지부진했던 까닭에 숭의야구장은 영광의 순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인천의 야구팬들은 인천을 상징하는 노래인 <연안부두>를 부르며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곤 했다.

2002년에 문학야구장이 개장하면서 SK 와이번스 1군 팀은 문학구장으로 홈구장을 옮겼다. 2002년 6월 9일에 열린 SK 와이번스와 현대 유니콘스의 프로야구 정규 경기 고별전을 마지막으로, 이후로 숭의야구장에서 1군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는 일은 없었다. 2000년 시즌과 2006~2008년 시즌에서 SK 와이번스 2군 팀의 홈구장으로 숭의야구장을 사용한 바 있다.

숭의야구장은 인천 도심의 미관을 해치는 노후화 시설로 지적받다가 도심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숭의야구장 해체가 결정되었다. 숭의야구장은 개장 74년만인 2008년에 해체되었고 현재 이 자리에는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세워졌다.

특징[편집]

높은 철망 펜스[편집]

숭의야구장은 좌우펜스까지의 거리가 91m, 중앙펜스까지의 거리가 100m로 경기장 넓이가 극단적으로 작았다. 현대 프로야구장의 일반적인 크기가 좌우펜스 99m, 중앙펜스 122m 내외인 것과 비교해 보면 숭의야구장은 정상적인 프로야구 경기 진행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작은 구장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야구장을 더 확장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펜스의 높이를 높이는 것으로 대책을 마련했다. 태평양 돌핀스 시절 김성근 감독은 1.5m 높이의 펜스 위에 7m 높이의 철망을 덧대어 펜스 높이를 8.5m로 만들었다. 이후 현대 유니콘스 시절 김재박 감독이 철망 높이를 3.5m로 낮추어서 펜스 높이를 약 5m로 조정하였다.

흑토[편집]

내야 지역에는 잔디를 깔지 않고 최고급 흑토(黑土)만 깔았다. 이러한 형태는 일본 야구장에서는 흔한 것이었지만 국내에서는 드물었다. 외야에는 인조잔디를 깔아서 검은색의 내야와 초록색의 외야가 선명하게 대비되도록 만들었다.

편리한 접근성[편집]

수도권 전철 1호선 도원역 1번 출구로 나와서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올 수 있어서 접근성이 아주 좋은 야구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