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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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2011년 5월)

박근혜(朴槿惠, 1952년 2월 2일~ )는 대한민국의 제 18대 대통령이다. 2004년~2006년에는 한나라당의 대표최고위원을 맡았으며, 2011년에는 한나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되어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기도 했다. 2012년 6월 치러진 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11번째 비례대표위원으로 선출되며 5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박근혜의 아버지는 1961년부터 1979년까지 19년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이다. 이 사실은 박근혜가 대한민국에서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2012년 12월 19일 치러진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며 국내 최초 여성 대통령이 되었다.

생애

정치 입문 전

박근혜는 박정희의 첫째 딸로서, 1952년 2월 2일에 대구 중구의 삼덕동에서 태어났다. 박근혜는 1970년에 서울성심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74년에 서강대학교에서 전자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정치 경력

박근혜는 1998년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지역구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되며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같은 지역구에서 2000년, 2004년, 2008년 당선되며 4선의원이 되었다. 2012년에는 대구 달성군의 지역구 의원이 아닌 새누리당의 비례대표의원으로 선출되어 5선의원이 되었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박근혜는 유세를 다니던 도중 괴한의 커터칼 테러를 받아 얼굴을 가격당했는데, 병원에서 수술을 마친 뒤 처음으로 한 말이 "대전은요?"였다. 이는 당시 경합지역이었던 대전광역시의 상황을 물어본 것이다. 결국 대전광역시장 자리는 한나라당의 박성효 후보 차지가 되었는데, 박근혜의 발언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2 대선주자로서의 활동

박근혜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부터 이미 차기 대통령 후보로서 압도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었다. 박근혜의 지지율은 이명박 정부 임기 동안 2위 후보에 대한 지지율의 2배 이상의 격차를 유지하며 큰 변화 없이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중 박근혜의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때는 2008년 총선 당시 활약하며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만들었을 때이다. 이 당시 한나라당은 박근혜가 전방위에서 선거판을 지휘한 결과 한나라당은 과반수의 의석(153석)을 확보하게 되었다. 반대로 지지율이 가장 낮았던 때는 2010년, 세종시 수정안 문제로 이명박 정부와 갈등을 빚었던 때이다.

그러던 2011년 9월, 의학박사, 안랩의 창업자로 잘 알려져 있는 안철수가 갑자기 강력한 대권주자로 급부상하며 박근혜와의 지지율 격차를 좁혀나갔다. 한때는 안철수의 지지율이 박근혜의 지지율을 추월하기까지 하는 등 2012년 대선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2012년 7월 10일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서 공식적으로 2012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는 국민의 행복추구권, 경제민주화, 한국형 맞춤형 복지 공약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강조하였다. 이후 치러진 새누리당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84%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었다. 이는 득표율 2위를 기록한 김문수 후보의 득표율이 8.7%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이다.

정치적 성향

박근혜는 상당히 보수적인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감세정책, 규제 철폐, 법치주의 강화 등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그러나 2009년 들어서 부터는 복지에 초점을 맞추어 특히 “한국형 복지정책”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는 한 번 내세운 정치적 공약을 타협 없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원칙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2010년, 이명박 정부가 대선공약이었던 세종시 추진사업을 원안에서 수정할 것을 주장했을 때, 박근혜는 원칙과 신뢰를 내세워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였고, 결국 세종시는 원안대로 추진되었다. 박근혜는 2011년 당시 한나라당의 공약이었던 동남권 신공항이 경제성 문제로 취소되었을 때에도 “국민과의 약속을 어겨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내세워 계속 추진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비판

일부에서는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박근혜의 아버지가 박정희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5.16 군사정변[1]에 대해서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발언하며 물의를 빚었다. 박근혜를 비꼬는 별명으로는 “수첩공주”가 있다. 이는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로 “귀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이를 비꼬아 “공주”라고 부르는 것이며, 박근혜는 대중연설을 할 때 준비된 연설문을 그냥 읽기만 한다고 해서 “수첩공주”라고 비꼬는 것이다. 박근혜는 무표정으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아버지 박정희를 닮아 감정의 표현이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인데, 이를 비꼬아 “얼음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저서

  • 2007년, <고난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 2001년, <나의 어머니 육영수>
  • 1998년,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
  • 1998년, <고난을 벗 삼아 진실을 등대삼아>
  • 1995년, <내 마음의 여정>
  • 1993년,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주석

  1. ^ 박정희의 주도로 제2공화국을 무력으로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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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 윤보선 · 박정희 · 최규하 · 전두환 · 노태우 · 김영삼 · 김대중 · 노무현 · 이명박 · 박근혜 · 문재인 · 윤석열